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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에는 아주 독특한 문자 체계가 존재합니다. 이것은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뿐 아니라 세계의 어느 나라의 것과도 닮지 않은 독특한 글자체계입니다. 우리가 한글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1446년에 반포된 이래, 지금까지 한국어를 표기하는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사용되면서 한글은 한국인의 자부심이자 정신적인 근간으로 뿌리내렸습니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 한국 사람들은 한자를 사용해서 문자 생활을 해왔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가 민족을 초월한 공통 문어 구실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자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공통의 문어 구실을 하였습니다. 오래전의 한국 사람들이 한자를 사용하여 문자 생활을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자가 나타내는 바와 소리가 다르다는 점은 언어사용과 문자사용 간에 괴리를 낳았습니다. 한자는 본래 중국어를 기록하는 문자여서 한국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것이 몹시 어려운 까닭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사람들은 고유의 언어인 한국어와는 별도로 한자를 공부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신라시대에 설총이 한자를 한국식으로 표기하는 방법인 이두를 정리 한 바 있으나, 그마저도 한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널리 문자생활을 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농사일을 우선시하던 당시에 농민들이 생업을 뒤로 하고 그 많은 글자를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학식이 곧 권력이던 사회였습니다. 이것은 곧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사회적 기득권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로 이루어진 당시의 어려운 문자 체계는 사회적 계급을 고착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시험의 문제를 이해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자연히 과거 응시는 글을 배운 귀족의 자제들로만 제한되었습니다. 과거시험이 당시 벼슬길에 오르는 등용문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한자와 한문은 귀족층들로 하여금 자신의 부와 권력을 세습시키기에 적합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문 독해의 어려움은 민중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한문으로 쓰인 자신의 죄목을 읽을 수조차 없는 백성들이 짓지도 않은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억울하게 처벌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 좋은 예일 것입니다.

 

1443년, 28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글자체계의 발명은 그 자체만으로도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들만큼 획기적인 시도였습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직접 창제한 것은 앞서 열거한 문제점들을 해결하여 글을 배우지 못해 무지한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고, 그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리와 지식을 가르쳐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루게 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글은 본래 이토록 선하고 인도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따뜻한 마음의 현신인 것입니다. 사실상 귀족에게만 허용되는 것이었던 문자 해독력. 귀족층에게만 제한되었던 이 기득권이 모두에게 분배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혁명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혁명의 중심에 세종이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권층의 최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왕의 신분으로 말입니다. 최만리를 비롯한 조정의 대신들이 강력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학자적 식견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끈기 있게 대신들을 설득해 가며 훈민정음을 반포한 세종의 어진 마음이란 성군이라 추앙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 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적힌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훈민정음은 배우기 쉬운 글자입니다. 한자의 방대함과 복잡함에 비해 간단하고 체계적인 한글이 문맹 퇴치에 크게 기여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중세시대에 농민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이를 통해 지식 보급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당시 서양사회의 문화수준을 상회하는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농사와 예법에 관한 한글 서적이 민중에까지 널리 반포되면서 사회 통합과 농업 발전을 꾀할 수 있었으며, 한글 소설의 유행으로 상업적인 출판이 성행하게 됨으로써, 중세사회를 근대로 이끈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했습니다.

 
 

세계에서 사용되는 모든 문자들은 뜻글자와 소리글자로 나뉩니다. 뜻글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한자를 떠올리면 됩니다. 이 체계에서는 글자 하나하나가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문자 체계는 한 가지 큰 단점이 있습니다. 뜻글자는 문화가 발달하면서 지시하고자 하는 사물과 개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새로운 글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뜻글자는 글자가 새로 생길 때마다 이를 새로 암기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 소리글자는 각각의 글자가 일정한 소리를 담당하고 있는 체계입니다. 그래서 소리글자는 하나의 언어가 갖는 풍부한 소리들을 쉽게 처리해 낼 수 있습니다.

소리글자는 또 세분화하여 음절문자와 음소문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글자가 자모음의 구분 없이 ‘가’나 ‘여’ 따위의 일정한 음절 자체를 담당하는 것이 음절 문자의 특징이며, 일본문자인 가나 문자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의 글자가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되는 음소문자는 음절 문자보다 더욱 더 발전한 문자 체계로서 로마문자와 한글이 이에 해당합니다. 음소들이 각각 일정한 성질을 띠고 있는 음소문자인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의 3분할 체계로써 그 조합으로 거의 모든 소리를 표현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필요한 글자의 개수는 단지 24개일 뿐입니다. 이것은 뜻글자인 중국의 한자나 음절문자인 일본의 가나문자보다 훨씬 더 경제적인 체계인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보다 더 진화한 문자체계로 자질문자라는 체계에 대해 말합니다. 자질이란 하나의 소리를 다른 소리와 구별하는 특징입니다. 한글은 각 글자마다 이러한 자질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하여 자질문자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글의 ‘ㅋ’과 ‘ㄲ’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글자들은 모두 ’ㄱ’을 토대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ㅋ'와 ‘ㄲ’은 ’ㄱ’에 획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음성적 자질(거센소리, 된소리)이 추가된 글자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글은 음소문자로 분류되긴 하지만 언어학적으로 서양의 알파벳보다도 차원이 높고 과학적인 문자체계라는 것입니다.

한글은 조형원리에서도 몇 가지 눈여겨 볼 만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단순화의 원리입니다. 훈민정음 기본 자모음 글자들은 극도로 간결한 최소한의 형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삼각형, 원, 사각형, 점, 직선으로 이루어진 기본 도형만으로 한글의 그 어떤 형태라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가획의 원칙입니다. 한글의 모든 글자들은 기본자형을 중심으로 센소리와 된소리에 획을 추가하는 간단한 방식에 따라 전개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기본 형태소들은 중심을 축으로 좌우가 대칭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좌우대칭 관계는 시각적인 균형감과 안정감을 줍니다.

 
 

체계적이되 간단한 한글 시스템 이론은 오늘날에 더욱더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한글은 정보화 시대에 문자전송과 전자문서화를 위한 최적의 문자입니다. 12개의 핸드폰 자판과 60개의 컴퓨터 자판에서 한글보다 빠르고 쉽게 작업할 수 있는 문자는 없습니다. 그것은 특히, 한정된 자판만을 사용해야하는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자판을 만들 때 그 진가를 발합니다. 천지인 방식이든, 획 추가 방식이든 국내 휴대폰에서 사용되는 자판배열 방식은 모두 한글의 창제원리의 연장선상에서 고안된 것입니다.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는 한글의 자질 덕분에, 한글은 알파벳이나 중국의 한자, 일본의 가나와는 그 효율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그들이 이 휴대폰 자판체계가 만들어내는 편리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디자인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에 당면해 있습니다. 한글은 한자처럼 모아쓰기를 하는 문자이지만 일본의 가나 문자나 서양의 알파벳처럼 나눠쓰기도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모두 가능하여 디자인적인 다양성을 추구할 여지가 매우 풍부합니다. 요즘 들어 더 활기를 띄고 있는 한글디자인은 디자인에 걸맞는 한글의 속성을 이용한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한글은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아름답고 과학적입니다. 그것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변함없이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2008년으로 한글은 562돌을 맞았습니다. 우리의 고유한 문자 체계를 기념하기 위한 10월 9일 한글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성대하며 다채로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한글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더 커져가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여기저기에서 한글에 관한 상품을 출시하고 한글을 바르게 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지식에 불과하더라도 한글에 관한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여러분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은 오랜 시간동안 단 한순간도 한글 없이 생활했던 적이 없으니까요.